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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리뷰 – 상실과 수용, 새로운 울림

by tomasjin 2025. 9. 21.

〈사운드 오브 메탈〉은 청력을 잃어가는 드러머의 여정을 따라가며 상실과 수용의 과정을 그린다. 사운드 연출과 배우의 몰입이 남긴 깊은 울림을 전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포스터, 드럼을 연주하는 주인공 루벤(리즈 아메드)이 무대 위에서 상체를 드러낸 채 집중하는 모습
영화 〈사운드 오브 메탈〉 포스터

작품 소개 – 음악에서 울림을 잃다

2019년 제작된 〈사운드 오브 메탈〉은 미국 출신 감독 다리우스 마더의 장편 데뷔작으로, 음악과 인간 드라마를 교차시킨 독특한 작품이다. 메탈 밴드의 드러머 루벤이 돌연 청력을 잃게 되면서 겪는 삶의 변화와 내적 성장을 따라가며, 단순히 음악가의 불행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재구성’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탐구한다.

 

주연을 맡은 리즈 아메드는 루벤의 불안, 분노, 체념, 그리고 수용에 이르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루 역을 맡은 올리비아 쿡은 음악적 동료이자 연인으로서의 복합적인 감정을 절제된 연기로 담아내며 이야기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 작품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운드 디자인이다. 관객은 루벤이 경험하는 청각의 왜곡과 차단을 직접 체험하며, 소리를 잃는다는 것이 단순히 듣지 못하는 상태가 아니라 세계 전체가 변형되는 사건임을 실감한다. 그 결과 이 영화는 베니스와 토론토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섯 개 부문 후보에 올라 사운드와 편집 부문을 수상했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음악을 통해 살아온 한 사람이 음악을 잃었을 때 어떤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장애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관객에게 ‘삶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질문을 던지는 의미 있는 작품이다.

줄거리 요약 – 상실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루벤은 연인 루와 함께 메탈 밴드를 꾸려 미국 전역을 돌며 공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드럼을 두드리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어떤 불안도 느끼지 못할 만큼 몰입했지만, 그의 삶은 음악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균형을 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 도중 갑작스럽게 귀가 먹먹해지고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불안한 징후가 찾아온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 여기지만, 상태는 점점 심각해지고 결국 병원을 찾은 그는 청력을 되돌릴 수 없다는 냉정한 진단을 받는다.

 

음악이 전부였던 루벤에게 이 사실은 곧 삶 전체가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그는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채 값비싼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 예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집착한다. 그러나 공연은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었고, 연인 루마저도 무너져가는 그의 모습을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결국 두 사람은 갈림길에 서게 되고, 루벤은 절망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때 루는 그를 청각장애 공동체로 이끌어간다. 낯선 공간에서 루벤은 처음으로 소리를 대신하는 언어, 즉 수화와 침묵의 대화를 마주한다. 공동체는 단순히 청력을 잃은 이들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작은 사회였다. 루벤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서히 분노를 내려놓고, 조용히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예전의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수술을 결심한다.

 

결국 그는 인공 와우 수술을 받고 다시 소리를 듣게 되지만, 그것은 그가 기억하던 음악의 맑은 울림이 아니었다. 전자적 잡음과 왜곡된 음성은 오히려 더 큰 혼란을 안겼다. 사랑했던 연인과 재회한 순간에도 그는 이전과는 달라진 거리를 느끼며, 자신이 되돌아가려 했던 세계가 이미 사라졌음을 깨닫는다.

 

마지막에 루벤은 조용히 주변의 소음을 내려놓고 세상의 침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그의 이후 삶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그 고요한 순간은 관객에게 상실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며 긴 여운을 남긴다.

연출과 특징 – 침묵을 소리로 표현하다

〈사운드 오브 메탈〉의 가장 두드러진 연출은 단연 사운드 디자인이다. 감독 다리우스 마더는 주인공 루벤이 경험하는 청각의 붕괴를 단순히 설명하지 않고, 소리 자체를 통해 관객이 직접 체험하도록 설계했다. 처음 공연 장면에서 울려 퍼지던 강렬한 드럼 소리가 갑작스럽게 진공 상태처럼 사라지며 둔탁한 울림으로 바뀌는 순간, 관객은 청력을 잃어가는 불안을 루벤과 함께 느낀다. 이후 전자적으로 왜곡된 음성이나 금속성 잡음은 보청기와 인공 와우를 통한 불완전한 청취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며, 청각 상실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세계 인식 전체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카메라는 루벤의 시선에 밀착해 관객이 그의 내적 상태를 따라가도록 이끈다. 얼굴 클로즈업을 통해 드러나는 표정의 미세한 떨림이나 손가락의 불안한 움직임은 대사가 사라진 순간에도 감정을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특히 공동체에서 수화를 배우는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손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담아내어, ‘소리 없는 언어’가 어떻게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 되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편집 리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초반부 공연 장면에서는 빠른 컷과 강렬한 소리로 루벤의 에너지를 보여주지만, 청력을 잃은 이후의 장면에서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며 침묵의 무게를 강조한다. 이는 음악으로 가득 찼던 삶이 점점 고요 속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관객이 루벤의 변화에 몰입하도록 한다.

 

음악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드럼 소리의 부재는 결핍을 드러내고, 대신 찾아오는 고요는 수용의 과정으로 읽힌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삽입되는 미묘한 음향 효과들은 소리를 잃어도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단순히 청각적 체험의 재현을 넘어, 영화 전체가 관객에게 또 다른 감각적 사유의 장을 열어주는 순간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적 완성도를 높였다. 리즈 아메드는 작은 눈빛의 흔들림, 호흡의 빠르기 변화, 손의 긴장만으로도 루벤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한다. 그는 실제로 수화를 배우고 드럼을 연습해 캐릭터에 몰입했으며, 그 진정성은 화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올리비아 쿡은 루벤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연인의 복잡한 내면을 절제된 방식으로 연기해, 이야기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화려한 영상미보다는 절제된 카메라와 실험적 사운드, 그리고 배우의 사실적 연기를 통해 삶의 상실과 수용을 그려냈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단순한 음악 영화의 범주를 넘어, 관객이 체험적으로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감상 후기와 총평 – 수용이 남긴 조용한 울림

〈사운드 오브 메탈〉은 상실을 비극적으로만 바라보는 기존의 시선에서 벗어나, 그것을 또 다른 출발점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청력을 잃는다는 극적인 상황은 관객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영화는 그것을 절망의 끝이 아니라 삶을 새롭게 배우는 과정으로 그려낸다. 루벤이 공동체 안에서 서서히 마음을 열고, 결국 고요 속에서 평온을 찾는 과정은 관객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영화가 큰 울림이나 자극적인 반전을 사용하지 않고도, 잔잔한 흐름 속에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이었다. 루벤이 침묵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장면은 우리 삶에서 불가피하게 다가오는 변화와 상실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던진다. 이 여운은 오랫동안 마음을 울리며, 관객 각자에게 다른 질문과 위로를 건넨다.

 

이 영화는 특히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이들이나, 예상치 못한 어려움 앞에서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연인과 함께 보며 서로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으로도, 홀로 보며 내면의 목소리를 들여다보는 순간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화려한 음악 영화가 아니라, 삶을 깊이 성찰하게 하는 드라마로서 자리한다. 전체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남기며, 누구에게나 꼭 한 번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