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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 : 궁전 속 욕망의 체스게임

by tomasjin 2025. 5. 22.

영화 &lt; 더 페이버릿 &gt; : 포스터
여왕의 마음을 차지한 건, 사랑일까? 전략일까?

욕망과 생존의 경계에서, 궁정은 전장이 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표면적으로는 18세기 영국 궁정을 무대로 한 시대극이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정치극과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역사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의 감정과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며, 그 안에 숨겨진 심리 게임을 치밀하게 설계한다. 앤 여왕, 사라 제닝스, 애비게일 힐. 이 세 인물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도, 일방적인 주종도 아니다. 감정과 계산, 사랑과 위선이 교차하며, 관객은 그들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모호함 속에 놓인다.

 

이 영화의 핵심은 누가 승자인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파열음과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고 붕괴되는지를 관찰하는 데 있다. 여왕 앤은 정치적 권위를 갖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인물이다. 사라는 여왕을 조종하며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애비게일은 가장 아래에서 시작해 철저하게 상황을 계산하며 위로 올라선다. 이 세 인물의 싸움은 피로 얼룩진 전투가 아니라, 말과 침묵, 시선과 미소로 이루어진 은밀한 전쟁이다.

 

감독은 이 불안정한 감정의 지형을 비틀린 유머와 미묘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란티모스 특유의 냉정한 거리감과 의도적인 연출 방식은 궁정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심리적 밀실로 만든다. 《더 페이버릿》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현재의 권력, 인간관계, 감정의 복잡성을 고스란히 투영하며, 관객이 그 안에서 불편함과 매혹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세 여인의 권력 다툼, 그 중심에 선 여왕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18세기 초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세 명의 여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시 영국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지속하며 정치적으로도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왕좌에는 병약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앤 여왕이 앉아 있다. 그녀는 스스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실질적인 권력은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연인이기도 한 사라 제닝스가 쥐고 있다. 사라는 정치적인 감각이 탁월하고, 여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내각과 국정을 조율하며 모든 의사결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한다.

 

하지만 궁정의 권력 판도가 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인 애비게일 힐이 궁에 하녀로 들어오면서부터다. 처음엔 겸손하고 조심스러워 보였던 애비게일은, 여왕의 병세를 우연히 치료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녀는 여왕을 향한 사라의 지배적 태도와는 달리, 다정하고 섬세한 말투로 접근하고, 여왕의 감정적 허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여왕은 점차 애비게일의 다정한 관심에 끌리기 시작하고, 애비게일은 그 틈을 타 권력의 한가운데로 진입한다.

 

사라는 점점 불안해진다. 애비게일의 야망을 간파한 그녀는 견제하려 하지만, 이미 여왕의 감정은 애비게일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여왕은 사라에게 점점 날을 세우고, 사라는 정치적 결정권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그녀는 여왕에게서 완전히 밀려나며 궁을 떠나게 된다. 사라의 퇴장은 단순한 좌천이 아니라, 여왕의 인생에서 중요한 감정의 지점을 상실하는 순간으로 그려진다.

 

이제 궁정은 애비게일의 무대가 된다. 그녀는 귀족 작위를 받고, 한때 꿈꾸던 안정된 삶을 손에 넣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왕의 마음은 점점 불안정해지고, 애비게일은 그 감정의 진짜 무게를 체감하게 된다. 처음에는 감정을 얻기 위해 권력을 사용했던 관계가, 이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조작하는 구조로 바뀐다. 이 과정에서 애비게일은 자신이 감정적 승자가 아니라, 또 다른 굴레에 갇힌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영화는 단순히 권력의 이동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세 인물이 어떤 상처를 품고 있는지,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여왕은 병과 외로움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이며, 사라는 권력 너머의 충성심과 감정을 품은 복잡한 내면의 소유자다. 애비게일은 살아남기 위해 도덕을 버렸고, 손에 쥔 것들이 오히려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이 세 여성은 권력을 통해 서로를 밀어내고 끌어안으며, 결국 감정의 상처와 생존의 비극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인물로 남는다.

사랑인가, 권력인가 – 얽힌 감정 속 진짜 승자는 누구인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을 다루는 동시에, 그 이면에 숨은 복잡한 감정의 파동을 정교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에서 권력은 단순한 정치적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사랑, 생존 본능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등장하는 세 여성 – 여왕 앤, 사라, 애비게일 – 모두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원하지만, 그 동기와 수단은 전혀 다르다. 그들의 관계는 감정과 전략, 상처와 욕망이 얽혀 있는 다층적인 구조이며, 영화는 이들을 통해 '사랑과 권력은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여왕 앤은 권력의 정점에 있으나, 극도로 외롭고 상처 입은 인물이다. 그녀는 감정적으로 의존할 상대를 갈망하며, 사라에게 그것을 기대하지만, 사라는 여왕의 취약함을 이용해 실질적인 정치 권력을 휘두른다. 사라에게 여왕은 보호의 대상이자 전략의 파트너이며, 이 관계는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정치적 동맹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애비게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왕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녀는 동정심과 부드러움을 무기로 삼고, 감정을 교묘하게 활용해 자신을 끌어올린다.

 

애비게일의 접근 방식은 외면상으로는 따뜻하고 진심어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냉철한 계산과 생존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녀는 하녀라는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왕의 약점을 기회로 삼고, 감정을 거래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 결과 애비게일은 귀족이 되고 권력의 중심에 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순간부터 여왕과의 관계는 점점 공허해지고, 그녀는 자신이 쥐고 있던 감정의 진정성조차 의심하게 된다. 권력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진짜 사랑이나 연대는 사라진 상태다.

 

반면 사라는 권력을 잃었지만, 감정의 진심을 유지한 인물로 남는다. 그녀는 여왕과의 오랜 관계 속에서 전략가였지만,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여왕을 아끼고 있었고, 그것이 권력 다툼의 끝자락에서 드러난다.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정면으로 조명한다. 감정에 진심이었던 사람은 쫓겨나고, 전략으로만 접근한 사람은 왕좌 곁에 남는다. 하지만 그 자리는 이전처럼 단단하지 않다. 애비게일은 여왕의 완전한 신뢰를 받지 못하며, 자신이 믿었던 권력의 안정성도 서서히 무너져간다.

 

결국 영화는 ‘권력의 승자’가 누군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나 자신을 변형시키는지, 감정과 전략이 어떻게 충돌하고 타협되는지를 보여준다. 그 누구도 완전히 옳지 않고, 그 누구도 온전히 나쁘지 않다. 각각의 인물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갈망하고, 생존을 위해 싸운다. 《더 페이버릿》은 그 싸움의 결과가 아닌, 싸움 자체가 인간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권력은 결국, 감정을 시험하는 가장 잔인한 무대임을 이 영화는 말없이 증명한다.

사라, 애비게일, 앤 – 권력의 중심에서 흔들린 세 인물의 초상

《더 페이버릿》에서 이야기를 이끄는 세 여성 인물은 단순한 권력 게임의 참가자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상처, 동기, 방식으로 왕실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서로 얽히고 충돌한다. 이 세 인물의 성격과 변화는 단순한 서사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영화 전체의 정서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앤 여왕은 영화에서 가장 고립된 인물이다. 그녀는 외적으로는 나라의 권력을 쥔 절대 권력자지만, 실상은 병약하고 불안정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그녀의 감정은 상실감과 외로움에서 비롯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17마리의 토끼는 그녀가 잃은 아이들의 상징이며, 그녀가 감정적으로 얼마나 결핍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앤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줄 사람을 원하지만, 그것이 진짜 사랑인지 이용당하는 것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녀의 위치는 권력의 정점이지만, 마음속은 끊임없는 허기와 공허로 가득 차 있다.

 

사라 제닝스는 앤 여왕과 가장 오랜 관계를 맺어온 인물로, 여왕을 감정적으로 통제하는 동시에 정치적으로 보호한다. 사라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국정을 운영하며, 여왕에게는 의존이 아니라 의무감과 실질적인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냉정함이 결국 앤에게는 상처가 되고,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점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사라는 진심을 감추는 법을 알지만, 결국 그것이 독이 되어 그녀를 여왕의 곁에서 밀어낸다. 그녀는 누구보다 앤의 취약함을 잘 알았고, 그 감정을 보호하려 했지만, 방식은 너무나 비정하고 차가웠다.

 

애비게일 힐은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겪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궁에 들어온 하녀였지만, 점차 그 누구보다도 영리하게 권력의 구조를 파악하고 자신의 생존 전략을 실행해간다. 애비게일은 여왕에게 상냥하고 배려 깊은 태도를 보이며, 감정적으로 접근하지만 그 안에는 철저한 계산이 숨어 있다. 그녀는 단지 여왕의 애정을 얻기 위해 접근한 것이 아니라, 그 애정을 지렛대로 삼아 자신의 위치를 상승시키려 한다. 결국 그녀는 사라를 밀어내고 귀족 작위를 얻지만, 여왕과의 관계는 단순한 감정이 아닌, 무기화된 관계로 전락한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세 인물 중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도덕적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앤은 피해자이자 권력자이며, 사라는 진심 어린 조언자이자 통제자다. 애비게일은 생존자이자 조작자다. 이처럼 인물들은 선과 악, 진심과 계산 사이를 오가며 관객의 판단을 유보하게 만든다. 영화는 이 세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통해, 권력과 감정이 어떻게 충돌하고 뒤섞이는지를 보여준다. 그 결과 《더 페이버릿》은 단순한 권력의 이동을 넘어, 감정의 균열과 무너짐까지도 동시에 그려낸다.

승자 없는 게임, 남겨진 감정의 파편들

《더 페이버릿》의 결말은 전형적인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앤 여왕과 애비게일이 침대 옆에서 마주하는 순간, 애비게일은 처음으로 권력의 무게와 감정의 공허함을 동시에 실감한다. 그들의 관계는 이미 사랑이나 신뢰에서 멀어진 지 오래고, 오직 지위와 생존만이 남은 상태다. 여왕의 손아귀 안에서 모든 것을 쥐었다고 믿었던 애비게일은, 실은 감정이라는 미지의 세계에서 점점 침몰해간다.

 

여왕 역시 마찬가지다. 사라를 잃은 후, 그녀는 감정적으로 점점 더 불안정해지고, 애비게일에게서 진심을 느끼지 못한 채 감정을 강제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 장면에서 여왕이 애비게일의 머리를 눌러 무릎에 얹는 행위는,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자와 하인 사이의 구도를 되새기며, 그녀가 애비게일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통제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여왕은 감정의 결핍을 통제로 대체하고, 애비게일은 권력의 획득을 감정의 진정성으로 위장하려 한다. 결국 이 관계는 모두가 거짓을 짊어진 채 이어지는, 위태로운 동맹에 불과하다.

 

결국 영화는 누가 옳고, 누가 틀렸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사라가 쫓겨났다고 해서 패자라 할 수 없고, 애비게일이 승진했다고 해서 행복해졌다고도 할 수 없다. 여왕은 여전히 왕좌에 앉아 있지만, 그녀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영화는 승자 없는 게임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은 감정을 무기로 삼고, 사랑을 전략으로 사용하고, 권력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사용하는 인간들의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더 페이버릿》은 단순히 궁정 내 정치극이 아닌,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와 권력 구조를 압축한 일종의 메타포로 읽힌다.

 

이 작품은 여성 캐릭터들의 복잡한 감정선과 전략적 사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면서도, 그 중심에 있는 감정의 진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우리는 애비게일이 정말로 여왕을 사랑했는지, 사라가 왜 진심을 감췄는지, 여왕은 왜 끊임없이 감정의 균형을 잃는지를 끝까지 알 수 없다. 이 불확실성은 영화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며,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은 단순한 정리나 해석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을 안고 극장을 나서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를 응원했는지, 누구의 편에 섰는지, 그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를 되묻게 만드는 정서다. 《더 페이버릿》은 이야기의 끝이 아닌, 감정의 여운으로 오래 남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의 침묵은 강렬한 음악보다 깊게 관객의 마음을 흔들며, 한 번의 엔딩이 아닌 끝나지 않은 감정의 반복처럼 다가온다.


사랑과 권력이 교차하는 궁정에서 벌어지는 세 여인의 심리전. 《더 페이버릿》은 생존을 위한 감정의 전략과 권력의 본질을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인간관계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고밀도 심리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