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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와의 전쟁> : 웃고 떠들며 타락해간 어느 중간 보스의 이야기

by tomasjin 2025. 4. 6.

영화 &lt;범죄와의 전쟁&gt;: 포스터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

 

1990년대, 대한민국 사회의 민낯을 조폭이라는 거울로 비추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 작품은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다. 인간의 본능, 권력의 속성, 타락의 정당화, 그 복잡한 퍼즐을 찢고 웃으며 살아가는 한 인물의 이야기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은 우리 시대의 중간 보스였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했다.


1. 줄거리 : 조폭도 정치도 웃으며 타락했던 시대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1990년대 초, 대한민국 사회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변화를 겪던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의 시작은 세관 공무원이자 ‘줄 잘 서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 최익현(최민식)이 우연히 마약 밀수 사건에 휘말리면서 조폭 출신 사업가 최형배(하정우)와 연결되는 과정이다. 이 둘의 만남은 단순한 거래 관계로 시작되지만, 최익현의 ‘넉살 좋은 말빨’과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곧 조직 내 입지를 급격히 키우게 만든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권 개입이었지만 점차 조폭과 정치 사이를 오가며 브로커로 활동하는 익현은 권력이라는 마약에 점점 중독된다. 그는 정치인을 등에 업고, 각종 청탁과 로비, 거래를 통해 점차 ‘정치 조폭’으로 거듭나며 부를 축적한다. 특히 지역 유지, 정치인, 검사 등과 술자리를 하며 사회 상류층의 일원인 것처럼 행동하는 장면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부패 구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영화 속 최익현은 조직 내에서 직접적으로 칼을 들진 않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언어'와 '인맥'이라는 무기를 들고 있다. 익현은 ‘형님’이라는 호칭 하나로 인간관계를 지배하고,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오가며 이익을 챙긴다. 겉으로는 항상 웃고 농담을 던지지만, 그 뒤에 감춰진 계산과 이기심은 날카롭고 잔인하다. 결국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국가적 명분 앞에서 그는 꼬리 자르기의 희생양이 되고,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기반이 무너진다. 익현의 몰락은 개인의 추락인 동시에, 권력이라는 허상에 기댄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2. 캐릭터 분석 – 최익현, 권력의 중독자

최익현은 조폭도, 정치인도, 공무원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평범한 가장이자 국가 공무원이지만, 그 내면은 권력과 인정욕구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누군가의 충성을 강요하지 않지만, 언제나 중심에 서기를 바란다. 가장 큰 특징은 직접적인 폭력이나 명령을 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움직이게 만드는 ‘말’이다. 익현은 폭력보다는 언변, 주먹보다는 위계, 무력보다는 술자리와 호칭을 통해 세상을 지배한다.

 

그가 구사하는 ‘형님 정치’는 조직 내에서 상징적 권위를 부여하고, 동시에 정치권과의 접점에서는 브로커로서 기능한다. 인맥이 모든 것인 사회에서, 그는 자신의 연줄과 술자리를 바탕으로 입지를 다지고 판을 넓혀간다. 하지만 그의 권력은 구조적 기반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허세와 눈치로 유지되는 일종의 ‘거품 권력’이다. 결국 시대가 바뀌고,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칼날이 내려오자 가장 먼저 잘려 나가는 것도 그 같은 중간 보스다.

 

이 인물의 가장 비극적인 면은, 자신의 타락을 인지하면서도 멈추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는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생존을 위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스스로 권력의 중심에 서고 싶은 열망 때문이다. 최익현은 악인도, 선인도 아닌,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며 기회를 쫓은 전형적인 ‘생존형 권력자’다.


3. 명대사로 본 인물의 본질

<범죄와의 전쟁>에서 가장 유명한 명대사 중 하나는 “내가, 누군지 알아?"다. 이 말은 최익현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할 때마다 꺼내는 말로, 단순한 허세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한국 사회에서 ‘인맥’과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실질적인 권력이나 실력보다, 누구를 알고 있고 어디에 줄을 대고 있느냐에 따라 자기 위치가 정해지는 세상을 살아간다. 이 대사는 그런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자, 동시에 그 안에 몸을 담근 익현의 자화상이다.

 

또 다른 명대사인 “내가 너 키웠잖아 이 새X야”는 영화 후반부에서 익현이 최형배에게 배신당하고 분노할 때 나온다. 이 말에는 단순한 배신의 감정뿐 아니라, 자신이 지금껏 권력을 유지해온 방식이 무너지는 데 대한 분노와 당혹감이 담겨 있다. 그는 조직의 누군가를 키워주고, 정보를 제공하고, 자리를 만들어줌으로써 충성과 보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자 그런 룰은 무너졌고, 더 이상 ‘형님’의 말 한 마디는 통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영화 전반에 걸쳐 익현의 대사들은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뱉는 유머와 농담, 술자리의 말들은 모두 계산된 수단이며,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말에는 시대의 흐름이 담겨 있다. 시대가 허용한 만큼 그는 타락했고, 그 말들은 그 시대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을 타협하게 만들었는지를 상징한다. 결국 그의 언어는 개인의 성격이자 시대의 언어였으며, 그를 망하게 한 도구이자 그를 정상에 올려놓은 수단이었다.


4. 영화 해석 – 유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비판

<범죄와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조폭 세계를 배경으로 한 갱스터물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1990년대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풍자극이다. 영화는 곳곳에 유머와 웃음을 심어놓는다. 최익현의 말투, 갑작스러운 상황 설정, 형님 문화의 과장된 묘사 등은 관객의 긴장을 풀게 하면서 동시에 ‘웃기지만 씁쓸한 현실’을 인지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웃기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현실의 부조리를 가볍게 포장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방식이다.

 

특히 인물들의 대화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일종의 ‘사회 풍속도’처럼 기능한다.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지, 어떤 논리로 타인을 이용하고 배신하는지를 대사와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보여준다. 윤종빈 감독은 사실적인 대사와 연기를 통해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을 카메라로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몰입감을 만든다.

 

또한 영화는 ‘범죄’라는 요소를 단순한 악의 표현이 아닌, 구조적 문제의 결과물로 그려낸다.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정치인, 권력보다 더 교활한 관료들이 등장하면서 ‘진짜 나쁜놈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현실 속 권력층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자, 관객 스스로에게도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이런 구조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처럼 <범죄와의 전쟁>은 웃음을 무기로 하되, 그 웃음 속에 감춰진 사회적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부패를 고발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개인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그린다. 유쾌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영화는 끝까지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을 들이밀고 있다.


5. 조폭 영화 그 이상의 가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흔히 조폭 영화로 분류되지만, 실상은 그 이상의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일반적인 조폭 영화들이 폭력성과 조직 간 갈등, 배신 등을 중심으로 그리는 반면, 이 작품은 조폭이라는 틀을 빌려 사회 시스템 전체를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조직폭력배이거나 그 주변 인물이지만, 더 주목해야 할 건 그들의 행동이 단순한 범죄로 그치지 않고 정치·행정 시스템과 얽혀 있다는 점이다.

 

최익현은 비록 공무원 출신이지만, 권력의 주변을 돌며 브로커로 성장한다. 그는 폭력보다는 연줄과 연설, 술자리와 호칭, 그리고 ‘형님’이라는 관계를 통해 판을 키운다. 이와 같은 인물 설정은 단순한 폭력 조직이 아닌, 사회 전체가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작동하는 부패 구조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속 세계는 범죄와 권력이 결탁한 하나의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 안에서는 조폭이나 정치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지만, 관객은 영화를 보며 실제 한국 사회와 너무나도 흡사한 현실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익현의 성공과 몰락, 형배의 배신, 권력자들의 꼬리 자르기는 단지 영화적 장치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윤종빈 감독의 리얼리즘 연출과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가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은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 수많은 범죄 영화들이 이 작품의 연출 방식, 대사 톤, 시대적 배경 설정을 따르며 '포스트 범죄와의 전쟁' 스타일을 형성했다. 최민식과 하정우의 강렬한 연기 대결은 여전히 회자되며, 영화계와 대중 사이에서 오랜 시간 회자되고 있다.

 

이처럼 <범죄와의 전쟁>은 장르적 재미를 넘어서, 사회적 풍자와 시대의 진단,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까지 던지는 작품이다. 단지 '조폭 영화'라고 보기엔 너무나 깊고, 현실에 닿아 있으며, 지금도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또 다른 익현들을 향해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히 조폭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 군상들의 타락과 생존의 기록이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은 우스꽝스럽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며, 그가 겪는 몰락은 그 자체로 사회 구조의 붕괴를 의미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익현 같은 인물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들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런 불편한 질문을 남기며, 관객에게 묵직한 여운을 던진다. 아직 <범죄와의 전쟁>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 이 시대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꼭 한 번 감상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