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는 단순한 종교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믿음이라는 인간의 내면적 구조를 해체하고, 그것이 언제든 맹목이 될 수 있음을 정면으로 경고한다. 누군가는 구원을 말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믿음을 이용해 타인의 생을 조종하고 파괴한다. 감독 장재현은 『검은 사제들』에 이어 또 한 번 종교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의 본성과 현실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이 영화는 기독교나 불교 같은 특정 종교를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를 통해 스스로를 신이라 믿는 이들의 '자의적 해석'이 문제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사바하』는 어쩌면, 우리가 믿는 신보다 더 무서운 건 '인간이 만든 신'일지도 모른다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 지점에서 영화는 관객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믿음을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목소리를 따라가고 있을 뿐인가?
▣ 의문의 사건들, 교차하는 시선들 –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쌍둥이 자매의 한쪽이 태어나자마자 '짐승'이라 불리며 봉인되었다는 불길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불완전한 존재는 시간이 흐르며 한쪽 세상에 숨어 살아가고, 그와 동시에 강원도 외곽에서는 어린 학생이 실종되는 사건들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이 모든 의문의 중심에는 한 종교 집단, '디기탈파'라는 기이한 신흥종교가 있다.
주인공 박목사(이정재)는 이단 종교를 추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전형적인 신앙인은 아니며, 오히려 교리에 비판적이며 분석적으로 접근한다. 그런 그가 디기탈파를 조사하던 중, 이 사건이 단순한 이단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된 종말론적 신념에서 비롯된 거대한 퍼즐임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전개는 평면적이지 않다. 박목사의 시점과 경찰, 그리고 불완전한 쌍둥이 소녀의 시선이 교차되며, 관객은 무엇이 진짜인지,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사바하』는 이러한 구조적 복선을 통해 단순히 '범인을 잡는' 스릴러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의 배후에 도사린 인간의 맹목, 집단의 광기, 그리고 각자의 믿음이 충돌하는 순간을 천천히 쌓아가며, 스스로 결론을 만들어야 하는 무게감을 던진다.
▣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 악의 실체에 대한 질문
『사바하』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단순히 공포스러운 장면이나 반전을 통한 충격 때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악'이라는 개념을 기존과 전혀 다르게 정의한다. 악은 특정 존재가 아니라, 악한 행동을 자행하는 인간의 신념 속에서 태어난다. 특히 영화 속 디기탈파는 믿음이라는 이름 아래 절대적인 신을 만들고, 자신들이 그 신의 메시지를 따르고 있다고 믿으며 살인을 자행한다. 그들은 악하지 않다고 믿지만, 실상은 타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파괴자일 뿐이다.
쌍둥이 자매 중 갇힌 채 살아온 소녀는 외적으로는 괴물처럼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연약하고 무력한 존재다. 사회는 그녀를 괴물로 보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 주변에 있던 어른들, 지도자들, 무관심한 자들이야말로 진짜 괴물이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영화의 명대사: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고요."
이 대사는 한 신도의 입에서 터져 나오며, 영화 전체를 꿰뚫는 질문이자 비판이 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왜 세상은 이토록 부조리하고 고통으로 가득한가? 이 질문은 단지 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빙자해 만든 구조와 인간의 선택을 향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질문을 통해, 신의 존재 여부보다 그 믿음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믿음이 만들어낸 공포, 그리고 그 너머의 희망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박목사는 더 깊은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단순한 종교 범죄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뜻을 자처하며 벌인 광기의 연속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은 다름 아닌 아무런 힘도 없는 소녀들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완전한 절망으로 끝나지 않는다. 박목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고,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직접 현장으로 향한다. 그는 스스로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을 믿는 선택을 한다. 이 아이러니가 영화의 또 다른 메시지다. 신에 대한 맹신보다, 인간을 향한 신뢰가 더 필요한 시대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바하』는 비록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지만, 그 안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윤리와 삶의 자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관객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나는 어떤 믿음을 따르고 있나'라는 질문을 놓을 수 없다. 그것이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 영화 정보 요약
- 영화 제목: 사바하 (SVAHA: The Sixth Finger)
- 감독: 장재현
- 출연: 이정재, 박정민, 이재인, 진경
-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종교 스릴러
- 개봉연도: 2019년